몇달 전 보수공사를 마친 석조 벽은 조나우식 부조를 새기긴 했으나 여전히 비어 보였습니다. 그 벽을 장식하고 싶었던 왕실 사람들 중 하나가 그림을 걸자고 제안했나 봅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화가를 불렀고, 화가는 빳빳한 양피지에 조심스럽게 스케치를 시작했습니다. 왕실에서 고용한 화가는 초상화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전형적인 하일리아인 중년 남성의 모습입니다. 수염과 눈썹이 짙고 체격이 좋은 모습이었습니다만, 목탄을 잡을 때는 진정으로 섬세하고 정확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실력입니다. 그날 그가 맡은 인물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왕의 누이이자 훗날의 영혼의 현자님이었습니다.
"우리 미넬 님, 잘 좀 그리시오."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뒷편에서 들려왔습니다. 베르타가 감시하고 있다는 점은 그에게 부담스러웠을까요. 일단 베르타가 으름장을 놓자 화가는 흠칫 놀랐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호통 아닌 호통을 치는 그 굵은 목소리의 주인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왕실 근위대 출신, 현자님의 충직한 조수로 이름 높은 베르타였습니다.베르타는 창을 쥔 채로 무표정한 얼굴로 화가의 손놀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잘 해드리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화가는 침착하게 대꾸했지만, 왕실 사람의 초상화는 처음이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예술가라 해도, 근육질의 중년 군인이 무표정하게 쳐다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실수하면 끝장이라는 뜻이니까요. 현자님이 조용히 의자에 앉은 채 웃음을 띠며 말했습니다.
"너무 타박하지 마십시오. 왕실에서 엄선한 화가 중 하나이니, 그의 솜씨를 믿어도 좋습니다."
"그래도 감시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미넬님을 이상하게 그린다면... 제가 가만 안둘 겁니다."
베르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합니다. 화가는 긴장한 듯 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 목탄을 집어 들었습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점차 빨라집니다. 가능한 한 우아하고, 고결하며, 동시에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스케치가 점차 완성되어 갈수록, 베르타도 안심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초상화 프로젝트는 완성작을 받아보기 전에 모종의 이유로 무산되었고, 이 스케치도 훗날 마왕과의 전쟁으로 인해 불길에 휩싸여 사라져버립니다. 아마 이것이 후대에도 남았다면, 용사가 프루아패드를 받고 난 뒤 다섯번째 현자를 더 쉽게 찾았을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