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타는 제련된 조나니움 결정을 확보하기 위해 제련소로 향했습니다. 보통은 제작 골렘이나 집사 골렘 등의 시종에게 부탁했으나 베르타가 직접 자원합니다. 배터리 점검 날 때문일까요. 창고의 자동문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결정이 지금 당장 정확한 수량만큼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련소에 도착한 베르타가 당장 마주한 건 고장난 제련 골렘이었습니다. 제련을 담당하는 골렘이 멈춰 서 있었습니다. 빛나던 눈이 깜빡거렸습니다. 골렘의 몸체에 흐르던 조나우에너지도 점점 희미해져갑니다. 골렘은 제련된 결정을 쥐고 선반을 향한 자세로 가만히 있는 상태였습니다. 누가 시간의 비석을 쓴 것처럼 말입니다. 베르타에 정해진 절차가 있기 때문에 골렘 앞에 다가가서 말을 걸고 손을 흔드는 등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해볼만한 것을 다 해보지만, 골렘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베르타는 심하게 당황했습니다. 제련 골렘도 집사골렘과 유사한 모델이었지만, 직접 수리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몇 차례 고친 적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때마다 현자님의 서재에 꽂혀 있던 고서를 참고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르타가 지금 있는 곳은 서재가 아니었기 고서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골렘의 시스템을 보기 위해서는 조나우족의 주술이 필요하였으나, 베르타는 조나우족이 아닌 까닭에 주술을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베르타는 고장난 골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만약 현자님이시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며칠 전, 조수 일을 시작하며 현자님은 베르타에게 몇가지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조나우의 골렘기술이 집대성된 책 중 하나로, 베르타가 고대 기술에 눈 뜨게 한 책들입니다.
"베르타. 골렘도, 주술도 결국 패턴입니다. 오류가 나면, 명령부터 점검하십시오. 명령이 제대로 들어갔다 싶으면, 회로를 찾아 고치세요. 원인을 정확히 찾으면,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과학과 공학은 인과관계의 학문입니다."
베르타는 현자님의 말을 되새기며 골렘의 구조를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집사골렘과 유사한 모델이라면, 그 작동 원리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손바닥을 대어 하는 주술 인증을 우회하는 과정마저도 선천적으로 불가능하였으나, 골렘이 멈춘 원인을 찾아 그 부분만 직접 확인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명령어는 당장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만, 베르타는 골렘에게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드웨어 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제련소 근처에서 마차의 바퀴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바퀴자국 근처에는 빈 어음 양식, 여기저기 흩어진 빈 거래서 양식, 영수증 양식 ... 그리고, 들려오는 몇 문지기들의 대화. 아하. 베르타는 원인을 파악했습니다. 제련된 결정을 회수하고 전달하는 명령어에 모순이 발생하여, 골렘이 무엇을 해야할지 인식하지 못하고 선반 앞에 멈춰 있었던 것입니다. 즉, 결정을 용광로로부터 회수하는 과정과 완성된 결정을 선반에 올려놓는 과정에 충돌이 일어나서 움직임이 중단된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렉이 걸린 것입니다. 조나우의 골렘은 현대의 인공지능처럼 자연어 명령을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집사골렘과 제련 골렘, 제작 골렘들은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대화도 가능하지요. 하지만 제련소 근처를 지나치던 상단이 군수품을 두고 큰 소리로 싸우고 흥정하던 소리를 골렘이 명령으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베르타는 조심스럽게 골렘의 팔 부분을 열고, 내부의 조나우에너지가 흐르는 회로 하나를 살펴봅니다. 이쯤 명령어 초기화 스위치가 있던 것 같습니다. 이 태엽을 감고, 저 태엽을 감고, 버튼을 딸깍 누릅니다. 마침내 모든 명령을 잊은 골렘에게 초록색 빛이 나며 다시 활성화되었습니다. 골렘에게 기존의 명령을 다시 내린 베르타는 무사히 결정들을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베르타는 손에 쥔 결정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숨을 고르다가, 서서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미넬 님, 덕분입니다."
베르타는 그렇게 속삭이고는, 조심스럽게 결정을 바구니에 담아 제련소를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