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베르타가 최근에 심하게 다쳤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요즘들어 부쩍 늘은 몬스터 탓에 근위병 신분에 맞지 않게 토벌대로 자주 선발되는 베르타. 돌아온 베르타는 저녁을 먹고선 평소처럼 활에 아교가 제대로 먹혔는지, 화살 개수가 얼마나 남았는지, 방패와 날붙이 무기들이 얼마나 낡았는지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토벌 작전이 끝나고, 연인이자 조수가 걱정되어 무기고를 찾은 현자님의 눈에는 베르타가 토벌 도중 심하게 다쳐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분명히 조심한다고 했으니 별 일 아니겠지요. 아니, 다시 살펴보니 저건 분명히 다친 사람의 움직임입니다. 인체공학을 연구하며 하일리아인의 신체구조와 동세에 대해 읽은 기억이 있었기에 한번에 알 수 있었겠지요. 

 

" 다쳤습니까?"

"별일 아닙니다. 토벌대에 합류하며 리잘포스가 공격한 탓에 생채기만 났을 뿐입니다."

 

베르타는 현자님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꾸벅 인사를 합니다. 뜻밖의 방문에 놀란 것도 있지요. 보통은 베르타가 먼저 서재로 찾아갔기 때문일까요. 현자님은 의심의 눈초리로 단도의 날을 갈고 있는 베르타의 앞에 딱 섭니다. 갑작스레 다가온 현자님을 보고 놀란 베르타가 움찔합니다. 현자님은 베르타의 목덜미와 어깨 사이에 있는 붕대를 쳐다보다가 다시 베르타를 노려봅니다. 베르타가 감고 있는 붕대는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가장자리는 검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나한테 감히 거짓말 하는 겁니까."

"...."

"차라리 여신께 거짓을 고하세요."

"...."

 

베르타는 잘못을 아는 것 마냥 고개를 피합니다. 현자님은 골렘을 시켜 상처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가져옵니다. 현자님의 강한 말투를 들어보니 화가 단단히 나셨단 걸 단번에 알은 베르타. 현자님의 평소 성격을 잘 알던 탓에 어깨와 목을 감싼 헌 붕대를 보여드립니다. 현자님은 베르타의 어깨에 난 상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옷깃을 더 들춥니다. 베르타는 어깨만 다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깨의 상처는 가장 최근에 난 것이었습니다. 팔뚝, 등, 반대편 어깨, 허리, 다리, 발... 온갖 신체부위에 얕고 깊은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날붙이에 베인 상처, 화상자국,짐승에게 긁힌 상처. 베르타의 몸은 오랜 세월동안 왕가를 위해, 그리고 하이랄 백성을 위해 위험을 감수했던 그 흔적이 남겨진 군인의 몸이었습니다. 현자님은 베르타가 조심은 한다고 했지만 흉은 심각했습니다.

 

"저번에 조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후.... 언제부터 몸을 이렇게 안 사린 겁니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토벌도 오랜세월 했으니, 가늠이 가지 않습니다."

 

베르타는 그제서야 침묵을 깹니다. 현자님은 조나우족이 남동생과 본인 외에도 더 많았던 시절에 만들어졌던 비석에 새겨진 문자를 만지듯 흉터들을 쓸어봅니다. 어깨를 건드리자, 베르타가 쓰라린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아랫입술을 꽉 깨뭅니다. 왕가를 모시는 근위병은 상사에게 아픈 내색을 보이면 안된다는 의무감일까요.   

 

"왜 안 말했습니까. 의원과 의술용 골렘들을 부르면 됩니다. "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습니다."

 

베르타는 바로 대답을 하시는 현자님을 가만히 쳐다봅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현자님의 제 삼 안이 떠질 것만 같습니다.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다행이도 현자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진정합니다. 늦은 새벽, 현자님은 연구 분야를 바꾸기로 합니다. 고대의 의술 분야입니다. 선대의 기술 중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있는지 알기 위해 자신의 서재로 돌아오자마자 서가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조나우식 레이저 치료기기 사용법, <주술의 이해> 시리즈, 약초학 책, 플라즈마기술.... 온갖 양피지와 고서들을 꺼내봅니다. 책장이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단순한 외상 치료법이 아니라, 오래된 흉터까지도 지울 수 있는 방법도 찾아봅니다. 조나우족이 타고난 주술을 사용하는 방법, 버섯과 몬스터 부속물을 이용한 포션 제조법, 식이요법, 언급했듯 신화시대에는 잃어버린 기술인 레이저시술까지 다 찾아봅니다. 

 

현자님은 조용히 더 많은 책을 펼치고 양피지에 속기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책상 위는 온갖 먼지가 앉은 책으로 가득해져 갑니다. 미넬 님의 손은 어느새 잉크 자국과 먼지로 더러워집니다. 평소라면 정리정돈을 하고 손을 씼었겠지만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닙니다. 그때, 책을 쌓아둔 곳에서 책이 우르르 무너집니다.

 

"....하일리아 맙소사..."

 

베르타의 몸이 살아 움직이는 전투기록 비석이라 할지라도, 현자님에게는 그 기록은 필히, 그리고 신속하게 지우고 싶은 기록이었습니다. 베르타가 동의하지 않더라도요. 책 탑 하나가 무너지고 나서야 현자님은 손을 씻고 정리를 마저 하고, 책을 한 권 더 펼칩니다.

 

"그대는, 백전백승의 근위병으로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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