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타가 동료와 함께 왕궁 담벼락을 돌며 경비를 볼 때의 일입니다. 숲이 우거진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아기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바람소리 같기도 한 것이 들립니다. 그리고 길 근처에 있는 있는, 화단에 심은 관목 하나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었으면 별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돌아갔겠지만 바람도 심하게 불지 않습니다. 베르타는 창을 고쳐쥐고 경계태세를 갖춥니다. 옹벽을 타고 너머서 고위 관료나 왕족을 염탐하고 죽이려는 첩자와 암살자가 관목 속에서 경비병들이 지나갈 때를 기다리나 싶어서요.
"누구냐?"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수풀이 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옳다구나. 저놈 딱 걸렸구나. 베르타는 그놈을 포박하고 감옥에 가둬주겠다는 심정으로 관목의 가지를 홱 젖혀버립니다. 그런데 가지 사이로 보이는 것은 하일리아인도, 겔드족도, 조라족도, 리토족도, 심지어 또다른 최후의 조나우족도 아닌 눈을 갓 뜬 어린 강아지였습니다. 기력이 없어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로 끙끙거리며 수풀로 몸을 피했던 겁니다. 어미가 미처 데려가지 못한 들개의 새끼인가보다 싶어 베르타는 제복에 덧대어 입은 녹색 숄을 벗어 강아지를 감싸서 초소로 데려갑니다.
물병에 남은 우유를 그릇에 졸졸 따라주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핥아먹는 강아지. 잘만 먹이면 청회색 털과 흰 털이 곱게 날 것 같습니다. 요즘 우유와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 가격이 부쩍 올랐지만, 베르타 입장에서는 강아지를 살릴수만 있다면 귀해진 우유 쯤이야 희생할 수 있었습니다. 기력을 회복한 강아지는 베르타를 향해 꼬리치며 다가갑니다. 다시 문 밖에 두어도 쫄래쫄래 베르타를 쫓아다닙니다. 몇번이고 문 밖으로 쫓아냈지만 문을 닫으면 낑낑거리며 문을 긁기 일쑤였습니다. 베르타는 문을 열고 다시 강아지를 노려봅니다.
"이제 먹여줬으니 네 어미한테 가렴."
그런데 문 앞에 나름 '의젓하게' 앉아있는 강아지는 말 안듣는 개구진 강아지의 표정이었습니다. 목숨을 살려준 베르타를 새엄마로 삼겠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결국 포기한 베르타는 현자님의 서재까지 털이 잔뜩 뭉친 강아지를 잘 씻기고 빗겨서 데려갑니다. 다들 귀엽다고 칭찬을 해주니 더욱 의기양양해져서는 베르타를 따라갑니다. 강아지는 현자님을 처음 보고서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털썩 앞에 앉습니다.
"음?"
"오전에 살려줬더니 쫓아오던 들개입니다."
"....들개가 아니군요."
"예?"
"이리입니다."
네, 어릴 시절의 생김새가 비슷했던 탓에 회색늑대를 들개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귀가 아직 접혀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사람을 잘 따르는 이리는 현자님도 처음 보시는 것 같습니다. 보통 북쪽으로 자주 왕래하는 상단이나 목축업자의 양떼를 습격하는 해로운 동물로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일까요.
"어쩌다가 시내 한복판까지 내려왔을지 궁금합니다."
"연간 보고서를 보아하니 저번 겨울에 동사한 산양이 꽤 많다고 합니다. 그 탓에 산에 살던 들짐승들이, 아니 맹수들이 남하한 것이지요."
"어미는 그렇게 시내의 쓰레기를 뒤지다가, 가장 여린 개체가 뒤쳐진 것이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너무 사람 손을 탔으니 왕가에서 거두는 게 제일 낫겠습니다."
그 이후로 베르타는 어린 이리를 훈련시켰고, 이 이리는 다른 왕가의 개들과 이어지며 왕가에서 즐겨 기르던 대형견의 조상을 낳게 됩니다. 이 혼혈은 자신의 아비를 거둔 인간들에게 충성을 보였다는 이유로 널리 퍼져 왕가 뿐만 아니라 하일리아의 여관과 목장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그 품종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